
“일해서 남는 게 없어요. 전기료 내면 끝입니다.”
전북 군산에 위치한 한 합금철 제조업체 대표의 말이다. 전기로로 금속을 녹이는 이 공장은 최근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생산을 해도 매출의 30% 이상이 전기요금으로 빠져나가면서 수익은커녕 손실만 커졌기 때문이다. 이 공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국의 합금철, 제련, 고온 열처리 산업체들이 잇따라 문을 닫거나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
전기 사용량이 많은 에너지 다소비 업종들이 전기요금 폭등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특히 합금철 산업은 전기로(電氣爐)를 사용해 철과 실리콘, 망간 등을 녹여 합금 소재를 생산하는 구조라, 전체 제조원가에서 전력비 비중이 절대적이다. 일부 중소 업체는 전기요금만으로도 매출의 30~35%를 차지해 사실상 ‘공장 돌릴수록 적자’인 상황이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와 업계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산업용 전기요금은 세 차례 이상 인상되면서 kWh(킬로와트시)당 평균 단가가 40% 넘게 상승했다. 이는 생산원가에 민감한 중소 합금철 업체에 치명적이다. 한 중견 합금철 제조사는 “2022년엔 전기요금이 원가의 20%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30%를 넘겼고 올해는 35%까지 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토로했다.
이로 인해 폐업·휴업이 속출하고 있다. 포항, 군산, 태백 등 합금철 제조업체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올 들어서만도 수십 개 중소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거나 감산에 들어갔다. 지방자치단체와 산업단지관리공단에도 관련 문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업체는 중국산 저가 합금철 수입 물량에 밀려 가격 경쟁력도 잃고 있어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처럼 전기료 부담으로 산업 현장이 흔들리면서, 제조업 기반 붕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합금철은 철강·자동차·전기차 배터리 등의 필수 소재로 사용되는 만큼, 공급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국내 제조업 전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비철금속협회 관계자는 “합금철은 전략소재지만 수익성이 낮고, 설비 유지비가 커서 대기업보다는 중소·중견 업체가 주로 생산해 왔다”며 “이들이 무너질 경우 국내 소재 자립에 심각한 타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정부의 지원책이 사실상 미비하다는 점이다. 일부 지방정부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분을 한시적으로 보전해주는 시책을 검토하고 있지만, 전국 단위 정책이나 구조적 지원은 아직 요원하다. 탄소중립 목표에 따라 화석연료 중심 산업의 개편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이 과정에서 소외되는 산업군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보다 정교한 산업별 요금 정책과 함께, 장기적인 에너지 고효율화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모든 산업에 일괄적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하면, 에너지 효율이 낮은 업종부터 무너진다”며 “고효율 설비 전환에 대한 지원과 세분화된 요금체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가동 중단을 선언한 일부 합금철 업체들은 향후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폐업까지 검토 중이다. “이제는 문 닫는 게 사는 길”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현장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고금리, 고환율, 고전기료 ‘3고’ 속에 한국 제조업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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