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자동차굴기(汽車崛起)’를 다시 한 번 세계에 과시했다. 최근 상하이 모터쇼에서 자국 완성차 기업들이 무려 60종 이상의 신차를 쏟아내며, 기술력과 브랜드 경쟁력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미국과 유럽 중심의 자동차 산업 질서에 정면 도전장을 내민 것이자, 글로벌 무대에서 중국산 차량의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확대하려는 전략적 행보로 읽힌다. 특히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차력시위'는 일종의 정치경제적 시위 성격도 띠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하이 모터쇼, 기술과 전동화의 집결지
‘2025년 자동차 강국’을 목표로 하는 중국 정부의 지원 아래, 상하이 모터쇼는 단순한 전시회가 아닌 기술력 과시의 장으로 변모했다. BYD, 지리, 니오, 샤오펑 등 대표적인 중국 전기차(EV) 브랜드는 전동화, 자율주행, 스마트카 기술을 대거 투입한 신모델을 대거 공개했다.
BYD는 5종의 신형 EV를 전면에 내세우며, 테슬라와의 기술 격차 해소를 선언했고, 지리는 세계 최초의 AI 기반 사용자 맞춤형 차량을 공개하며 데이터 기반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으로의 진화를 강조했다.
샤오미는 첫 번째 양산형 전기차 SU7을 실물로 공개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었고, 니오는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한 SUV 신차로 ‘테크놀로지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굳히려는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중국차는 싸기만 하다”는 편견 깬 품질과 디자인
이번 모터쇼에서 눈에 띄는 점은 단순히 양산형 차량이 많아졌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중국차에 대한 ‘저가·저품질’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고급화 전략이 강하게 드러났다.
내외장 디자인은 유럽풍 감성을 적극 차용했고, 실내 UX와 디지털 계기판, OTA(Over-the-Air) 업데이트 기술 등 소프트웨어 경쟁력 강화도 강조됐다. 특히 일부 모델은 벤츠, BMW에 견줄 만큼의 마감 수준과 기능성을 자랑하며 관람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테슬라 전직 디자이너 출신들이 대거 합류한 리샹(理想)은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포지셔닝을 강화했고, ‘전기차계의 루이비통’을 자처한 아바타(AVATR)는 감성 품질과 첨단 기술을 융합한 쇼카로 시선을 끌었다.
미국과 유럽 겨냥한 수출 확대 전략 본격화
중국의 완성차 업체들은 단순히 내수 시장을 넘어, 이제는 명확히 글로벌 시장 공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유럽과 동남아, 남미 등지에서는 이미 중국산 EV가 테슬라, 현대차, 폭스바겐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BYD는 이번 전시를 통해 유럽형 차량 3종을 선보이며, 올해 말까지 독일·프랑스에 현지 매장을 오픈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니오와 샤오펑 역시 독일·노르웨이 등 유럽시장을 겨냥한 전략형 모델들을 공개하며, 유럽 진출 확대 의지를 천명했다.
이는 최근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 움직임에 대한 중국의 대응으로도 해석된다.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중국산 EV에 대한 관세 인상을 논의하는 가운데, 중국은 ‘기술력으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韓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중국차의 급부상은 한국 자동차 산업에도 분명한 도전이다. 기술·디자인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는 가운데,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잃을 경우 한국차의 글로벌 입지는 흔들릴 수 있다. 특히 중저가 전기차 시장에서는 이미 중국산 모델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현대차·기아는 고급화와 소프트웨어 중심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제네시스를 중심으로 한 프리미엄 브랜드 확장, 전용 EV 플랫폼(E-GMP) 고도화, 글로벌 OTA 인프라 구축 등이 그 일환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가격+브랜드+기술'의 삼각 경쟁력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정부 차원의 배터리 생태계 지원, R&D 투자세제 확대, 인재 확보 전략이 병행되어야 중국의 맹추격을 따돌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론: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브랜드’로
상하이 모터쇼는 단순한 전시회를 넘어, 중국 자동차 산업의 위상이 이제 ‘복제의 시대’를 넘어 ‘브랜드화의 시대’로 전환되었음을 상징한다.
세계는 지금 중국 자동차 산업의 고속 질주를 목격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견제하고, 한국은 대비해야 한다. 자동차 산업의 판도가 다시 쓰이고 있는 이 시점에서, 기술보다 중요한 건 ‘속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