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글로벌 식품 가격 상승을 주도했던 설탕 가격이 급락세로 돌아서며 ‘슈거플레이션(Sugarflation)’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설탕값 폭등은 초콜릿, 빵, 음료수, 아이스크림 등 설탕을 원료로 사용하는 다양한 소비재 가격에 도미노 인상을 불러온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제 설탕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면서 식품 업계는 숨통이 트이는 분위기고, 소비자들도 ‘단맛 인플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설탕 가격 하락은 단순히 특정 원자재의 가격 변동에 그치지 않는다. 글로벌 공급망, 기후 이슈, 식품기업 원가구조, 소비자물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 신호이기 때문이다. ‘슈거플레이션’이란 용어가 등장할 만큼 상징적 존재였던 설탕값의 변화는 향후 물가 안정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지표로 주목된다.
1년 새 반 토막 난 국제 설탕값
2024년 중반까지만 해도 뉴욕 ICE선물시장 기준 설탕 선물 가격은 톤당 27센트대를 넘나들며 12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브라질 등 주요 생산국의 가뭄과 물류 차질, 바이오에탄올 전환 확대 등이 겹치며 공급이 급감했던 탓이다.
하지만 2025년 들어 브라질의 생산 회복, 인도·태국의 수출 확대, 글로벌 수요 조정 등이 맞물리며 가격은 급속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4월 현재 톤당 18센트대로, 1년 만에 약 35% 이상 떨어진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추가 하락 여지도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슈거플레이션, 어디까지 반영됐나
설탕값 하락이 본격화되면서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곳은 가공식품업계다. 제과, 베이커리, 음료, 유제품 등 설탕 사용량이 많은 산업군에서 원가 부담이 다소 완화됐다. 롯데제과, 오리온, 빙그레 등 주요 식품기업들은 “설탕값 안정이 원가 관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통상 원재료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포장재, 물류비, 인건비 등 복합 원가 구조 때문에 즉각적인 가격 인하가 어렵다고 설명한다. 다만 올해 하반기부터는 일부 제품군에서 ‘가격 동결’ 또는 ‘소폭 인하’ 움직임이 감지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물가 안정 신호탄일까
설탕값 하락은 전체 물가 흐름에서도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국제 곡물과 원자재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소 완화되고 있는 가운데 설탕의 급락은 식료품 물가 안정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 한국은행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가공식품 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대비 2.8%로 둔화됐고, 이는 전년도 6%대와 비교해 확연한 차이다. 주요 가공식품 가격 중 설탕, 밀가루, 식용유 등의 가격 안정세가 직접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세계 공급망과 기후 영향, 변수는 여전
하지만 장기적인 가격 안정은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설탕의 주요 생산국인 브라질, 인도, 태국 등은 여전히 기후 변화에 민감한 지역이며, 엘니뇨·라니냐 주기에 따라 수확량은 크게 요동칠 수 있다. 특히 브라질은 바이오에탄올 정책 변화에 따라 설탕을 연료용 사탕수수로 돌릴 가능성도 상존한다.
또한 중동과 유럽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다시 고조될 경우, 해상 물류비용 상승은 다시 원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은 어느 한 요소만으로도 쉽게 흔들릴 수 있는 불안정한 구조다.
소비자 기대와 업계 대응, 새로운 흐름 만든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장의 가격 인하보다, ‘앞으로 더는 오르지 않겠지’라는 심리적 안정감이 중요하다. 그간 지속된 ‘밀크플레이션’, ‘슈거플레이션’, ‘오일플레이션’은 식탁 물가에 대한 불신을 키워왔다. 이제는 이 고리를 끊어내야 할 때다.
식품업계도 원가 인하분을 소비자에게 일정 부분 환원하는 ‘선순환 구조’에 대한 요구에 직면해 있다. 특히 브랜드 신뢰도, ESG 경영 측면에서 가격정책은 기업 이미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론: 설탕값 하락은 단맛인가, 착시인가
설탕값이 하락하면서 슈거플레이션은 분명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이는 물가 안정의 ‘완성’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된 ‘조정 국면’일 가능성이 크다. 기후, 지정학, 물류, 정책 변수는 여전히 존재하며, 가격의 정상화가 소비자의 체감 물가로 연결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설탕값 급락은 하나의 메시지를 던진다. ‘올랐던 건 언젠가 다시 내려올 수 있다’는 기대감. 지금은 그 기대를 현실로 바꾸기 위한 업계와 정책당국의 실행력이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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