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인공지능(AI) 기술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가운데, AI 산업의 핵심 인프라인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초고성능 컴퓨팅, 대규모 데이터 센터, AI 학습·추론 작업은 모두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전력 인프라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일본 정부가 ‘원자력 발전’ 카드를 다시 꺼내들며 재가동에 속도를 내고 있는 배경은 단순한 에너지 수급 이상의 전략적 판단으로 읽힙니다.
현재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강력한 탈원전 기조를 유지해왔지만, 최근 기조 전환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올해 들어 “안정적이고 저탄소 기반의 에너지 공급을 위해 원전은 필수적”이라고 발언하며, 기존 원전 재가동뿐 아니라 차세대 원전 건설까지 언급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에너지 정책 변화가 아닌, 첨단 산업 전략과 직결된 결단입니다.
가장 큰 배경은 AI가 주도하는 반도체 수요의 폭증입니다. 최근 엔비디아, TSMC, 삼성전자 등이 주도하는 고성능 반도체 생산은 이전보다 수배 이상의 전력을 필요로 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AI 데이터센터는 중소 도시 하나의 전력 사용량을 넘길 정도로 전력 집약적이며, 이는 화석연료 중심의 공급만으로는 감당이 어려운 수준입니다. 일본은 TSMC, 라피더스(Rapidus), 소니 등의 반도체 생산 거점을 유치하며 ‘반도체 재도약’을 꾀하고 있는데, 이 모든 첨단 공정은 안정적이고 친환경적인 전력 인프라 없이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본은 원전을 단순한 전력 생산 수단이 아닌, 국가 첨단 산업 경쟁력의 기반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일본 경제산업성은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될 규슈, 홋카이도 지역 인근 원전의 조속한 가동 재개를 추진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전체 전력 공급의 20~22%를 원자력으로 채운다는 로드맵을 제시한 상태입니다.
여기엔 또 다른 변수도 있습니다. 바로 탄소중립(Net Zero)입니다. 반도체 제조는 다량의 물과 전기,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에너지 집약 산업이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과 직결됩니다. 이에 따라 글로벌 반도체 수요 기업들은 친환경 생산 공정을 요구하고 있으며, 일본이 원전을 활용해 탄소중립형 전력망을 제공할 수 있다면 반도체 투자 유치에 더욱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도 시사점은 큽니다. 대한민국 역시 AI 반도체, 메모리 중심의 글로벌 강국을 지향하고 있으나, 정작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 전략은 다소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LNG 의존도가 여전히 높고, 원자력 활용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논쟁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AI 산업의 확장은 기술력만으로 되지 않으며, ‘에너지-산업-환경’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인프라 전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일본의 원전 재가동은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가 아닙니다. 오히려 AI와 반도체라는 미래 산업을 위한 준비이자, 국가 생존 전략의 일환입니다. 기술 경쟁이 심화될수록, 전력은 보이지 않는 무기가 됩니다. 그리고 그 무기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향후 국가의 산업 패권 지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은 기술보다 기반이, 기술자보다 인프라가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일본의 선택은 그 미래를 겨냥한 조용한 선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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