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은 모든 걸 가려낸다. 그리고 그 칼끝은 명품 시장에도 예외 없이 도달했다.
2024년 하반기, 국내외 명품 시장은 예상과 달리 역성장 혹은 정체에 직면했다. 한때 MZ세대까지 열광하며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가던 ‘명품 열풍’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시장 전체가 주춤하는 가운데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만은 오히려 더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 하이엔드만 웃는다…에루샤, 실적 ‘고공행진’
2024년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1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10% 이상 성장했고, 에르메스는 무려 17%의 영업이익률을 유지했다. 샤넬 역시 비공개 기업임에도 내부 발표에서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서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 중”이라고 밝히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들 브랜드는 고가 정책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높은 가격대를 지닌 제품을 앞세워 충성 고객을 공략하고 있다. ‘버킨’이나 ‘클래식 플랩백’처럼 희소성이 높은 상품은 예약 대기조차 힘들며, 고객 등급제가 강화되면서 VIP 우대 전략이 더욱 명확해졌다.
결국 현재의 명품 시장은 진짜 부자들만을 위한 무대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 중저가 명품, 고전 면치 못해
반면, 100만~200만 원대의 비교적 ‘입문용’이라 여겨졌던 명품 브랜드들은 고전하고 있다. 토리버치, 마이클코어스, 코치 등은 매출 감소에 재고 부담까지 겹치며 대규모 할인에 나서고 있다.
심지어 일부 브랜드는 면세점 및 아울렛 중심으로 가격 인하 정책을 강화하고 있지만,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되는 부작용도 겪는 중이다.
이제는 “어설픈 명품 살 바에야 아예 명품 중의 명품을 산다”는 소비 트렌드가 형성되면서, 중저가 명품 브랜드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 국내 명품 소비도 ‘고소득층 집중’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백화점 명품관의 VIP 매출 비중은 60%를 넘는 수준으로, 전체 매출이 소수 상위 고객에게 집중되고 있다.
이른바 ‘VVIP 전용 라운지’는 매장 입장 자체가 제한되며, 원하는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선 브랜드에 충성도 높은 구매 이력이 필수다.
일반 고객의 경우 제품을 직접 보기도 어렵고, 가격도 ‘가격 인상 + 공급 제한’ 정책으로 인해 접근성이 갈수록 낮아지는 상황이다.
2025년 들어선 “명품은 살 수 있어서 사는 게 아니라, 살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 MZ의 ‘탈명품’ 트렌드도 감지된다
명품 업계에서 그동안 매출을 견인했던 MZ세대의 소비 태도도 바뀌고 있다.
가격 인상과 접근성 제한에 피로감을 느낀 이들은 이제 빈티지 제품, 리셀 플랫폼, 한정판 스니커즈나 컬래버 아이템 등으로 소비처를 다변화하고 있다.
특히 중고명품 거래 시장은 꾸준히 성장 중이다. 크림, 트렌비, 머스트잇 같은 리셀 플랫폼에서는 상태 좋은 샤넬, 루이비통 제품이 신상품보다 빠르게 거래되는 모습도 흔하다.
이와 함께 ‘조용한 명품’, ‘조용한 럭셔리(silent luxury)’라는 트렌드도 떠오르며, 로고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로로피아나, 브루넬로쿠치넬리, 더로우 같은 브랜드들이 마니아층을 확대 중이다.
■ 결국 ‘명품 양극화’는 심화된다
이 모든 흐름이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명품 시장도 더 이상 모두를 위한 시장이 아니라는 것.
이제는 가격보다도 희소성과 브랜드 히스토리, 그리고 고객 맞춤 경험이 브랜드의 미래를 좌우하는 시대다.
에루샤의 독주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초격차 브랜드만이 살아남는 고부가 시장의 법칙을 명확히 보여준다.
앞으로 명품 시장은 양극화가 더 심화될 것이다. 살아남는 브랜드는 더 정제되고, 더 비싸지고, 더 까다로워질 것이다. ‘소비의 민주화’라는 말이 무색해진 시대. 진짜 럭셔리는 지금, 또 한 번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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