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체질 개선'을 외치며 구조조정을 단행해온 롯데그룹이 이번엔 인사제도 개편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핵심은 직무 중심 보상 체계, 즉 '직무급제'의 도입이다. 직급 중심 연공서열 체계를 벗어나 ‘무엇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보상이 결정되는 시스템으로, 롯데가 고질적인 조직 경직성과 경쟁력 약화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번 변화는 단순한 제도 개편이 아니라, 저성장·저성과 체제에 빠진 롯데의 마지막 선택지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와 내부 구성원 모두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성과보다 연차' 체계와의 결별 선언
롯데는 2024년 상반기부터 주요 계열사를 중심으로 직무급제를 시범 도입, 2025년까지 전면 적용할 계획이다. 이로써 롯데는 기존의 직급·연차·근속 중심의 ‘호봉형’ 인사 체계에서 탈피, 직무의 난이도·중요도·시장가치를 기준으로 연봉과 승진 속도를 결정하게 된다.
이는 결국 ‘핵심 직군에는 더 보상하고, 비핵심 직군은 정리 또는 유연화하겠다’는 메시지와 다름없다. 그룹 전체 인력의 재배치 및 조직 슬림화를 추진하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특히 유통·호텔·화학 등 전통 주력 부문이 디지털화·친환경 전환 흐름에서 밀려나면서, ‘일 잘하는 사람’에 대한 정확한 보상 구조가 없이는 생존이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대대적인 직무 재정의 작업…‘누가 핵심인가’부터 새로 짠다
직무급제의 핵심은 '정확한 직무 분석'이다. 롯데는 계열사별로 HR컨설팅을 도입해 직무별 스코어링 체계(JD: Job Description)를 새로 구축 중이다. 이를 통해 전략기획, DT(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R&D, 글로벌영업 등 ‘핵심 미래 직무’를 선별하고, 이들에 대한 차별적 보상과 승진 트랙을 설계한다.
예를 들어 기존엔 과장과 부장이 연차 차이에 따라 임금을 받았다면, 앞으로는 같은 ‘AI분석가’ 직무를 수행하는 직원이라도 성과와 난이도에 따라 연봉이 달라지고, 고속 승진도 가능해진다.
내부 반발과 ‘승자독식’ 우려도
다만 변화에는 항상 마찰이 따른다. 특히 롯데는 연공서열 문화가 뿌리 깊은 조직으로, 단기간에 직무 중심 인사로 전환하기엔 문화적 저항이 만만치 않다.
한 유통 계열사 직원은 “업무보다 조직 내 위치와 연차를 중시하던 문화에서, 갑자기 능력 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하면 기존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능력 있는 인재만 우대받는 승자독식 체계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직무 기준의 보상 체계가 객관성을 갖추기 어렵고, 오히려 인사 평가 논란을 키울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정교한 설계가 요구된다.
왜 지금인가? 롯데의 생존을 건 선택
롯데는 왜 지금 이 시점에 직무급제 카드를 꺼낸 걸까? 가장 큰 배경은 지속되는 실적 부진과 위기감이다. 롯데는 2023년 기준으로 주요 유통 계열사의 영업이익이 30% 이상 감소했고, 투자매력도 하락으로 외부 인재 유입도 위축된 상태다. 반면 경쟁사인 신세계, 현대백화점은 적극적인 포트폴리오 다각화와 디지털 전환으로 격차를 벌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직무급제는 단순한 인사개편이 아니라, 롯데 전체의 체질을 바꾸는 '구조전환 시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력 중심 조직으로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산업 변화 속도에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결론: “성과 중심 조직”으로의 전환, 성공할 수 있을까?
롯데의 직무급제 전환은 단순한 인사정책이 아니라, 한국형 대기업의 보상 철학을 시험하는 실험대라 할 수 있다. ‘평등한 분배’에서 ‘선택적 집중’으로 가는 이 흐름이 성공하려면, 단순히 보상을 늘리는 것 이상으로, 직무 설계의 정교함, 리더십의 신뢰, 내부 커뮤니케이션의 투명성이 필수다.
이 실험이 성과를 낸다면, 롯데는 위기의 대기업에서 다시 ‘성과 중심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나 실패한다면, 조직 내 분열과 인재 유출이라는 더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롯데의 변화는 지금부터다. 보상의 정의가 바뀌는 순간, 기업의 미래도 바뀔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직무급제 이후 롯데의 체질이 실제로 바뀌는지를 통해 확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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