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고차 산업이 예상치 못한 글로벌 무대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러시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중심으로 'K-중고차'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달 들어 한국 중고차의 해외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무려 87% 급증했다. 특히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CIS) 지역과 중동 시장이 수요 급증의 핵심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몇 년간 서방의 경제 제재로 인해 신차 수급에 큰 차질을 겪고 있다. 주요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의 철수 이후, 대체 차량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런 틈을 타 한국 중고차가 빠르게 침투했다. 한국산 차량은 품질이 우수하고, 내구성이 높으며,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 러시아 소비자들 사이에서 신뢰를 얻고 있다.
UAE는 중계 무역지 역할을 하고 있다. 두바이와 아부다비를 중심으로 K-중고차가 집결한 뒤, 다시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인근 지역으로 재수출되는 구조다. 이러한 복합 수출 경로 덕분에 UAE 내 한국 중고차 거래량도 동반 급증하고 있으며, 현지 딜러들은 "K-중고차는 들어오기 무섭게 팔린다"고 전할 정도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이달 한국 중고차 수출대수는 약 3만8000대를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7% 이상 증가했다. 수출액 역시 크게 뛰어 4억 달러를 상회할 전망이다. 가장 수출이 많이 된 모델은 현대자동차의 '쏘나타', 기아 '스포티지', 제네시스 'G80' 등이었으며, 연식 3~5년 차 차량이 가장 인기가 높았다.
흥미로운 점은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다. 과거에는 저가형 중고차가 주로 선호됐지만, 최근에는 프리미엄 브랜드 차량이나 하이브리드·전기차 모델에 대한 관심도 빠르게 늘고 있다. 러시아와 중동 지역의 중산층 증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소비 여력 확대 등이 이런 트렌드를 뒷받침하고 있다.
정부와 업계는 이 기회를 '제2의 K-콘텐츠 수출 붐'으로 키우기 위한 전략 마련에 착수했다. 특히 중고차 수출 전용 인프라 구축이 본격화되고 있다. 인천항과 평택항 등 주요 항만에는 중고차 전용 선적시설 확충과 품질 인증 시스템 도입이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해외 직접 판매 채널 개척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위험요소도 존재한다. 러시아 시장은 국제 정세에 따라 언제든 수출 통로가 막힐 수 있는 리스크가 있으며, 중동 지역 역시 환율 변동성과 정치적 불안정성이라는 변수에 노출돼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호황을 단기 성과에 그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시장 다변화와 중장기 수출 안정성 확보가 필수"라고 강조한다.
특히, 품질 관리 문제는 앞으로 최대 과제가 될 전망이다. 일부 저품질 차량이 수출되면서 한국 중고차 전체에 대한 신뢰도 하락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는 수출 전 검수 강화, 인증 프로그램 확대, A/S 네트워크 구축 등을 통해 체계적인 품질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 글로벌 중고차 시장은 이제 '로컬 소비'를 넘어 '글로벌 트레이딩'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한국 중고차는 이 흐름을 선도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안정적인 차량 품질, 고급 브랜드 이미지, 디지털 전환 역량 등이 글로벌 시장 진출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러시아·UAE발 중고차 수출 호조는 단순한 일시적 반짝 성과가 아니다. 이는 한국 중고차 산업이 '수출 산업'으로 체질을 전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시장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수출 생태계를 구축한다면, K-중고차는 새로운 '1천억 달러 수출 시대'를 여는 또 다른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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