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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제품은 살리고, 반도체는 겨눈다… 美 상호관세 전략의 ‘선택과 집중’

제리비단 2025. 4. 14.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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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예고한 ‘상호관세’ 전략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때릴 건 때리되, 아픈 데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방식이다. 미국 상무부는 최근 스마트폰, 노트북 등 소비자 전자제품은 상호관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 달 내로 반도체를 포함한 핵심 부품군에 관세를 검토하겠다는 방침도 함께 내놨다. 전자기기 소비시장 안정은 유지하되, 공급망의 전략 자산인 반도체는 규제 대상으로 삼겠다는 ‘선택과 집중’이 분명해졌다.

상호관세란 외국이 미국산 제품에 매기는 관세율만큼 미국도 동일한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개념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부터 주장해온 이 방식은 현재 대선 국면에서 공화당 중심으로 재점화되고 있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도 일정 부분 수용하며, 중국, 한국, 베트남 등 주요 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수입제품 관세 검토에 착수한 상태다.

하지만 소비자 반발이 예상되는 항목에 대해선 ‘선별적 면제’ 방침을 내세웠다. 상무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 내 중산층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품목은 전자제품”이라며 “아이폰, 갤럭시폰, 맥북, 크롬북 등 대부분의 전자기기가 해외에서 조립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관세 부과는 오히려 국내 소비자 물가와 기업 수익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달리 반도체는 정반대다. 미 상무부는 한 달 내에 중국산 및 아시아산 반도체, 반도체 부품에 대한 ‘타깃 관세’ 검토를 공식화했다. 직접적인 수입 관세 부과는 물론,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조달하는 첨단 반도체 소재·장비에도 확대 적용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중국의 기술굴기 억제와 동시에, 자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 유치 및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특히 미국은 최근 발표한 ‘CHIPS and Science Act’를 통해 자국 내 반도체 공장 유치에 대규모 보조금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TSMC, 인텔 등이 미국 내 생산시설을 확장 중이지만, 여전히 많은 첨단 공정 장비와 소재는 한국, 일본, 네덜란드 등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이들 품목을 정밀 타격해 ‘현지 조달→현지 생산’으로의 전환을 유도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관세 전략이 단순한 무역보복이 아니라, 첨단기술 주도권을 둘러싼 지정학적 셈법의 일환이라고 분석한다. 소비자 제품은 정치적 반발을 피하면서, 반도체와 같이 전략 가치가 큰 품목에 집중적으로 규제를 가하는 방식이다. 이는 반도체를 ‘경제안보 자산’으로 보는 미국의 관점이 반영된 것이다.

한국 기업으로선 경고등이 켜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미국 현지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으나, 생산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국내와 중국에 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 있는 D램 공장이 글로벌 생산의 약 50%를 차지해, 미·중 갈등 격화 시 타격이 불가피하다.

또한 미국이 수출 규제를 강화할 경우, ASML 같은 유럽 장비업체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소재기업까지도 수출통제에 포함될 수 있어 공급망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이번 조치는 전자제품 소비는 안정화하고, 반도체 기술패권은 지키겠다는 미국의 이중전략으로 해석된다. 겉으로는 자유무역을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선별적 자국우선주의’를 강화하는 셈이다.

앞으로 한 달, 미국 정부의 반도체 관세안이 확정되면 글로벌 공급망은 다시 큰 파장을 맞을 수 있다. 기업들은 더 빠르게 미국 중심의 생산 재편에 속도를 낼 것이고, 한국을 비롯한 주요 반도체 국가들은 ‘줄서기’와 ‘리쇼어링’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미국의 칼날은 지금, 가장 정밀한 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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