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을 앞두고 다시 고개 든 도널드 트럼프의 관세 폭탄 전략에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이번엔 ‘모두 때린다’는 초강경 기조 대신 일부 핵심 소비재에는 예외를 뒀다. 트럼프가 언급한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에 대해 스마트폰, 컴퓨터 등 일부 품목은 제외하겠다고 밝히면서다. 겉으론 보호무역 고삐를 죄는 듯 보이지만, 내부를 뜯어보면 미 소비자 반발과 글로벌 공급망 현실을 의식한 ‘유연한 셈법’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는 최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중국, 인도 등에서 오는 제품에 미국과 동일한 세율을 물리는 상호관세제를 도입할 것”이라며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어 “컴퓨터, 휴대폰은 빠질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애플 아이폰, 삼성 갤럭시, HP·레노버 노트북 등 대부분이 중국·한국·베트남 등지에서 생산되며 미국 소비자들에게 직격탄이 될 수 있음을 감안한 것이다.
이러한 ‘예외 설정’은 트럼프식 통상 압박의 전형이다. 전면전을 예고해 긴장을 유도하고, 협상 여지를 남기며 실리를 챙긴다. 2018~2019년 미중 무역전쟁 당시에도 그는 아이폰 등 주요 소비재에 관세를 부과하려다 연기 또는 제외한 전력이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한 경계는 유지하되, 미국 소비자에게 타격이 가는 건 피하는 셈이다.
또한 이번 발언은 애플을 비롯한 미국 내 주요 테크 기업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애플은 대중 관세 확대 시 중국 내 생산을 줄이고 인도나 동남아로 이전하는 등 공급망 재편에 나서겠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 본사의 수익성과 글로벌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 트럼프도 이런 점을 감안해 핵심 소비재에는 ‘안전핀’을 남긴 것으로 해석된다.
관세 카드의 유력한 대상은 철강·자동차·의류 등 전통제조업 품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노동자들의 표심을 겨냥한 전략이기도 하다. 반면 첨단기기와 IT소비재는 유권자 대다수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인 만큼 직접적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트럼프의 관세 완급 조절은 공급망 이슈가 정치 이슈로 직결되는 미국 경제의 복잡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동시에 미국 내 소비자 물가와 기업 이익 간 균형, 나아가 대선 전략과 맞물린 교묘한 줄타기다. 보호무역이란 큰 기조는 유지하되, 통상전쟁의 불씨를 필요에 따라 조절하는 셈이다.
결국 이번 선언은 단순한 ‘관세 부과’가 아닌, 11월 대선을 앞둔 치밀한 경제 외교전의 서막이다. 트럼프식 외교는 한 손에 채찍을, 다른 손에는 당근을 쥐고 협상을 이끌어간다.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빠졌다고 해서 관세의 칼날이 무뎌졌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전략적으로 더 날카로워졌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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