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상폐’가 전략이 되는 시대
최근 국내 증시에서 ‘셀프상폐(상장폐지)’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과거에는 부실기업이나 경영 실패의 결과로 상장폐지가 언급됐다면, 이제는 자발적인 상장폐지가 하나의 경영전략으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오너나 최대주주가 공개매수를 통해 주식을 고가에 사들인 뒤 상장을 자진 철회하는 방식이 늘어나고 있어, 중소·중견기업 주주들 사이에 혼란과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웃돈 주고 사준다"는 명분 뒤에는 지배력 강화, 책임 회피, 자금 조달 유연화 등의 의도가 숨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본론: 줄줄이 ‘셀프상폐’…왜 지금일까?
올해 들어서만 벌써 10개 이상의 상장사가 자발적 상폐 절차에 돌입했거나 공식 검토 중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코스닥 상장사 A사와 유통기업 B사, 디지털 플랫폼업체 C사 등이 꼽힌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공개매수를 통한 지분 확대 → 소액주주 지분 95% 이하 달성 → 상장폐지 절차 개시라는 동일한 수순을 밟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대주주는 보통 주가 대비 20~40%의 프리미엄 가격을 제시해 주주들의 동의를 유도한다. 겉으로 보기엔 “주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퇴장”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상장 유지에 따른 공시의무, 회계감사, 경영 간섭 등의 부담을 털어내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공모가 대비 낮은 주가로 상장이 무색해진 기업들, 기업결합이나 M&A를 앞두고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일수록 셀프상폐를 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여기에 금리 상승과 자금 경색, IPO 시장 위축 등이 겹치며 ‘상장유지의 메리트’ 자체가 줄어든 점도 영향을 미쳤다. 즉, 굳이 상장사를 유지하며 시장 감시를 받을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결론: 자본시장 신뢰에 생긴 균열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소액주주 권익 보호라는 자본시장 기본 원칙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상장폐지 절차가 최대주주 주도로 이뤄지다 보니, ‘일방적 퇴장’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공개매수 프리미엄이 일시적으론 주주에게 이익이 될 수 있으나, 장기적 관점에서는 성장성 높은 기업이 상장을 통한 공공성을 포기하고 사익 중심으로 전환하는 구조가 지속될 경우, 자본시장의 생태계 자체가 왜곡될 수 있다.
금융당국도 관련 제도 정비를 검토 중이다. 현재로선 상장폐지 기준과 공개매수 절차가 비교적 유연하게 설계돼 있어, 의지만 있다면 어떤 기업이든 손쉽게 셀프상폐를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적 안전장치 없이 이 흐름이 이어질 경우, 결국 피해는 소액주주와 일반 투자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자본시장에는 단기 수익이 아닌 장기적 신뢰가 중요하다. 기업이 시장에 들어올 때만큼, 떠날 때도 책임 있는 절차와 설명이 요구되는 시대다. 줄줄이 이어지는 셀프상폐 행렬이 그저 일시적 유행이 아닌, 시장 시스템 전반의 신뢰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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