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희토류를 활용한 전략적 압박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이번에는 자국에서 생산된 희토류가 포함된 제품의 미국 수출을 제한하겠다는 움직임이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결정적인 소재인 희토류를 무기화하며 미·중 간 갈등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제3국인 한국에도 사실상의 압박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희토류(Rare Earth Elements)는 전기차, 반도체, 배터리, 첨단 무기체계까지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핵심 소재다. 전 세계 희토류 정제의 90% 이상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만큼, 그 영향력은 막대하다. 특히 희토류를 포함한 중간재나 완성품의 미국 수출이 제한될 경우, 이를 생산하거나 유통하는 한국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중국의 조치는 '반도체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해 미국은 반도체 장비 및 기술의 중국 수출을 제한했고, 이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중국은 갈륨·게르마늄 등 전략 광물의 수출을 통제했다. 이번에는 그 범위를 더욱 넓혀, "중국산 희토류를 활용한 모든 제품"이라는 조건까지 붙였다.
문제는 이 조치가 단순히 중국-미국 간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은 희토류를 중국에서 수입해 가공하거나 조립한 후 미국에 수출하는 여러 중간재 및 완제품의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희토류가 포함된 정밀 모터, 전장부품, 센서 등의 부품이 해당될 수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그동안 희토류 공급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다변화 노력을 기울여 왔다. 베트남, 호주, 캐나다 등으로부터의 수입선을 넓히고, 국내 기업들도 희토류 정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에 나섰다. 하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제한적이다. 희토류 자체는 다른 곳에서도 캘 수 있지만, 문제는 이를 정제하고 고순도로 가공하는 기술력에서 중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중국이 이러한 조치를 공식적인 ‘금수조치’가 아닌, 허가제 강화 및 기업 대상 가이드라인 강화라는 '회색 지대'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보복 조치를 취하기 어렵게 만들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한국 기업들은 더욱 불확실한 환경에 놓이게 됐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이번 조치를 계기로 제3국 기업들을 줄세우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과 손잡고 중국을 제재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의 가이드라인을 따를 것인가”를 선택하라는 식이다. 특히 한국처럼 미국과 안보 동맹을 맺고 있으면서 동시에 중국과 긴밀한 공급망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일수록, 그 압박의 강도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단기적으로는 중국의 조치가 미칠 영향을 정밀 분석하고, 고위급 외교 채널을 통해 자국 산업에 대한 예외 적용을 요청하는 등의 실무 대응이 시급하다. 동시에 중장기적으로는 희토류를 포함한 전략소재의 자급률을 높이고, 공급망을 완전히 재설계해야 한다.
정부는 희토류 등 핵심 광물에 대한 '국가 비축 전략'을 더욱 정교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민관 합동의 전략 광물 공동 구매 플랫폼을 만들어 가격 변동성과 지정학 리스크에 대비하거나, 국내 소재·정제 기업에 대한 보조금 및 세제 혜택을 확대할 수 있다.
중국의 조치는 분명 위협이지만, 한편으로는 ‘희토류 패권’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지금 이 위기를 기점으로 한국이 희토류 정제 기술의 자립을 이루고, 미·중 어느 쪽에도 휘둘리지 않는 독립적인 소재 전략을 수립한다면, 오히려 새로운 산업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적 대응과 장기적 전략이 함께 맞물리는 '투 트랙'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바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실질적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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