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슈퍼사이클은 끝났지만, HBM은 시작일 뿐이다."
이 말이 무색하지 않게 최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의 실적이 다시 한번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단연 **HBM(고대역폭 메모리)**이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부품으로 떠오른 HBM 수요가 급증하면서, 그에 공급망을 이루는 소부장 기업들까지 덩달아 ‘반도체 르네상스’를 맞이한 것이다. 일부 기업은 불과 1년 만에 영업이익이 7배 가까이 급증하는 깜짝 실적을 발표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HBM이 뭐길래?
HBM(High Bandwidth Memory)은 기존 D램보다 훨씬 빠르고 전력 효율이 뛰어난 차세대 메모리다. AI 연산에 필요한 대용량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처리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엔비디아의 GPU, AMD의 AI칩 등에 기본으로 탑재되며, 향후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에 따라 HBM 시장은 연평균 3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시장을 선도하는 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지만, 그 공급망에 속한 국내 소부장 기업들의 실적이 요즘 더욱 뜨겁다. 왜냐하면 HBM은 단순한 메모리 조립이 아니라 '정밀 소재와 극한 공정'의 총집합체이기 때문이다.
7배 급등 실적, 주역은 누구?
대표적인 수혜주는 덕산네오룩스, 한미반도체, 솔브레인, 티씨케이, 원익QnC, 동진쎄미켐 등이다. 이들은 반도체 패키징용 감광제, CMP 슬러리, 플라즈마 장비, 고순도 퀴츠, 식각용 케미컬 등 HBM 생산에 꼭 필요한 재료와 장비를 납품하고 있다.
특히 솔브레인은 올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무려 70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방 수요 회복과 함께 HBM 전용 케미컬 공급이 확대된 영향이다. 덕산네오룩스 역시 OLED 소재 중심이었던 사업 포트폴리오에 HBM 공정용 신소재가 더해지며 실적 반등을 이끌었다.
한미반도체는 패키징 장비 시장에서 AI 고성능 칩용 마이크로공정 장비 수주가 잇따르며 영업이익이 6배 가까이 급증했다. 동진쎄미켐은 EUV 포토레지스트 국산화에 이어 HBM 공정 적용 가능성이 부각되며 몸값이 치솟고 있다.
정부의 'K-소부장' 전략도 한몫
문재인 정부 시절 일본의 수출 규제를 계기로 시작된 '소부장 자립화' 정책이 지금에 와서 제2 전성기를 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9년 당시만 해도 '국산화'는 생존의 문제였지만, 이제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한국 소부장 기업이 중심축으로 올라서는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첨단 전략기술 중심의 산업 재편'을 핵심 기조로 내세우며 소부장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상생 클러스터 구축 등을 강력히 추진 중이다. 여기에 삼성·하이닉스가 HBM 증설에 수십조원을 투자하면서, 중견 소부장 기업들까지 줄줄이 수혜를 입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주가보다 실적”이 증명한 성장성
HBM이 반도체 업계의 ‘뉴 골드러시’로 떠오르자, 최근 투자자들의 관심도 다시 소부장으로 쏠리고 있다. 한때 AI 테마주 과열 이후 조정을 받았던 종목들이, 실적 발표와 함께 “진짜는 살아남는다”는 진리를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기술 장벽이 높은 소재 기업이나, 독점 납품 구조를 갖춘 장비 업체들은 중장기 성장성까지 인정받는 분위기다. 예컨대, 티씨케이는 미국·대만 업체들과 경쟁 없이 글로벌 퀴츠 시장을 과점하고 있고, 원익QnC는 2차 가공 정밀도에서 SK하이닉스의 유일 협력사로 자리잡고 있다.
앞으로 더 뜨거워진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HBM 시장은 2023년 50억 달러에서 2028년 15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는 곧 소부장 생태계의 급팽창을 의미한다. 과거 D램·낸드만 공급하던 시절과 달리, AI 수요와 맞물린 HBM은 공정 난이도가 훨씬 높아 신뢰 가능한 소재·장비 기업의 중요성이 배가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HBM은 단순 메모리가 아니라 패키징 기술과 소재, 열 제어, 전력 효율성까지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분야”라며 “소부장 업체들이 기술을 가진 만큼, 삼성과 하이닉스도 쉽게 공급처를 바꾸지 못한다”고 말했다.
결국, HBM 시대는 소부장 기업에게 가장 현실적인 기회다.
한때 ‘조연’이던 이들 기업이, 이제는 AI와 반도체 혁명의 진정한 동반자로 우뚝 서고 있다. 7배 실적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K반도체의 미래는 소부장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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