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쇼크’…글로벌 점유율 반토막, 주력 산업의 위기
서론: ‘배터리 강국’의 흔들리는 위상
한때 ‘2차전지 세계 최강’이라는 수식어가 붙던 대한민국 배터리 산업이 심각한 기로에 섰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이른바 K배터리 3사의 글로벌 점유율이 최근 1~2년 사이 반 토막 났다는 충격적인 지표가 공개됐다. ‘K배터리’는 미래 성장 동력으로 막대한 정부 지원과 민간 투자가 집중된 분야였지만, 중국 기업의 거센 추격과 원가 경쟁력의 한계, 전략 부재 등 복합 요인이 겹치며 하락세가 뚜렷해졌다. 특히 전기차 산업의 성장과 맞물려야 할 배터리 산업이 오히려 발목을 잡히는 모순적인 상황에 업계와 정부 모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본론 1: 점유율 ‘반토막’ 현실…CATL, BYD의 질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1분기 기준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에서 국내 3사의 합산 점유율은 22.1%에 불과하다. 이는 2년 전인 2022년 같은 기간 42.1%와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급감한 수치다. 특히 SK온의 점유율은 5%대까지 떨어졌고, 삼성SDI는 4%대를 유지하며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일하게 LG에너지솔루션이 13%대로 선방하고 있지만, CATL(37.7%)과 BYD(16.2%)에 뒤처지며 3위에 머물렀다.
중국계 업체들은 자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저가 물량 공세, 내수 전기차 시장의 폭발적 성장에 힘입어 글로벌 메이저 고객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특히 BYD는 자체 생산한 배터리를 자사 전기차에 탑재하면서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고, CATL은 포드·테슬라·혼다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의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들은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LFP(리튬인산철) 중심의 대중형 전략 배터리에서 기술 신뢰도도 높여가고 있다.
본론 2: K배터리의 구조적 한계와 전략 미흡
K배터리의 부진은 단순한 글로벌 경쟁 격화 때문만은 아니다. 국내 배터리 3사는 주로 고성능 고가 배터리(NCM 등)에 집중해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을 겨냥했지만, 가격 대비 효율을 중시하는 글로벌 추세를 따라가지 못했다. 특히 미국·유럽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보호무역 장벽이 높아지면서 현지 공장 가동률 확보와 비용 문제에서도 고전 중이다.
또한 생산설비 투자 규모는 크지만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SK온은 지난해까지 누적 영업손실이 수조 원에 달하며 재무 부담이 가중되고 있고, LG에너지솔루션도 수익률 저하로 인해 기술 투자 여력이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삼성SDI는 상대적으로 수익성은 양호하나 성장성 측면에서 큰 폭의 점유율 확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본론 3: 정부-민간 해법 공조 절실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산업 정책 전반에 대한 구조적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선 LFP 배터리에 대한 국내 기술 투자 확대와 글로벌 수요에 맞춘 제품 다변화 전략이 시급하다. 아직까지 한국은 LFP 기술의 대중화에 늦장 대응하고 있고, ESS·중저가 전기차 시장 진출도 미진하다.
또한 미국·유럽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 현지 합작법인(JV) 설립과 소재 내재화 전략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IRA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한 조건에 부합하는 공급망 설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북미 시장에서도 중국 업체에 밀릴 수 있다.
정부 차원의 세제지원, 기술개발 인센티브, 핵심 광물 확보 외교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최근 산업부는 ‘차세대 배터리 혁신로드맵’을 발표하고, 전고체·리튬황 등 차세대 기술 개발에 수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단기 실적이 절실한 업계는 보다 직접적인 유동성 지원과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결론: ‘배터리 코리아’ 재건을 위한 전략적 전환점
K배터리 산업의 위기는 단순한 일시적 부진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의 구조적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물이다. 전기차와 배터리의 주도권 경쟁은 기술력, 가격 경쟁력, 공급망 전략이 복합적으로 얽힌 전쟁이다. 이제 한국은 고성능 기술 일변도에서 벗어나 가격·효율·공급 체계를 통합적으로 고려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배터리 산업은 반도체에 이은 한국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지금 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향후 10년 한국 제조업의 판도 자체가 바뀔 수 있다. ‘배터리 코리아’의 부활을 위해 정부와 업계, 연구기관이 함께 긴밀한 공조를 이뤄야 할 때다. 산업 경쟁력 회복의 카운트다운이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