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화값 3년 만에 반토막…옷 안 팔리는 세상, 풍년이 독이 되다"
서론: 풍년에도 웃지 못하는 면화 농가와 섬유업계
한때 고공행진하던 면화값이 최근 3년 만에 반토막 났다. 글로벌 기후 여건이 안정되며 공급량은 늘었지만, 수요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의류 소비가 줄고, 재고가 쌓이면서 면화를 중심으로 한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의류업계의 ‘재고 쇼크’가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고금리와 소비 위축이 겹치면서 면직물 산업 전반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이로 인해 면화 재배 농가는 물론, 한국을 포함한 섬유·패션 업계까지 그 여파를 고스란히 맞고 있다.
본론: 가격은 반토막, 원인은 수요 위축과 패션 소비 둔화
국제 면화 가격은 2022년 고점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하락세를 보였다.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2022년 파운드당 1.4달러를 넘었던 면화 가격은 현재 약 0.75달러 수준으로 반토막 났다. 가격 급락의 원인 중 하나는 세계적인 생산량 증가다. 인도, 미국, 중국 등 주요 생산국은 기후 호조에 따라 작황이 개선됐고, 특히 인도는 수확량이 10%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공급이 늘어났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정작 문제는 수요다. 세계 최대 소비국인 중국이 경기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다, 유럽과 미국에서도 의류 소비가 둔화되면서 원단 구매 자체가 줄고 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은 재고 해소에 집중하며 신규 주문을 최소화하고 있어, 면화를 필요로 하는 제조 수요도 뚝 끊겼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면사와 면직물 수입은 늘었지만, 의류 완제품 수출은 줄고 있다. 면화를 가공해 옷을 만드는 국내 중소 섬유업체들은 매출 감소에 재고 부담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고 있다. 대형 패션업체들은 SPA 브랜드를 중심으로 ‘재고 중심의 기획생산’ 전략을 강화하면서, 예측 생산이 줄고 기초 소재 수요는 위축되는 구조다.
여기에 더해 소비 트렌드의 변화도 면화 수요 감소에 한몫하고 있다. 친환경·지속가능 패션이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리사이클 원단이나 합성 섬유 사용이 늘고 있고, 의류의 수명 연장과 중고거래 문화 확산 등도 ‘옷을 덜 사는 사회’를 가속화하고 있다.
결론: 풍년이 독이 되는 시장…공급보다 수요 회복이 관건
면화 시장의 혼란은 단순히 농산물 시장의 공급 과잉을 넘어, 전 세계 소비 트렌드 변화와 패션 산업 구조의 급격한 전환이 맞물린 결과다. 이전처럼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을 기대하긴 어려운 구조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저성장 기조 속에서 소비자의 지갑이 닫히는 한, 면화 시장의 반등도 쉽지 않다. 공급 조절과 함께 수요 회복이 병행돼야 가격 정상화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경기 회복과 함께 패션 산업 전반의 활력이 필요한데, 이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편 한국 섬유업계는 이번 면화값 하락을 원가 절감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혜택이 실질적인 매출 확대로 이어지려면, 내수 시장에서의 소비 회복 또는 해외 수출 활로 개척이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격 하락은 단지 공급자와 유통자의 손해로 귀결될 뿐이다.
결국, 면화 산업의 미래는 기후보다 소비자가 결정한다. 풍년이 축복이 되기 위해선, 다시 사람들이 ‘옷을 사게 만드는’ 시장 회복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