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의 경고등…악성 미분양 급증, 분양시장 반토막 현실화
국내 부동산 시장에 11년 만의 비상등이 켜졌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4년 말 기준 주택시장 동향에 따르면,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이 1만 가구를 돌파, 2013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동시에 신규 분양 물량도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급감하며, 주택 공급의 심각한 위축이 현실화되고 있다.
‘악성 미분양’은 통상 준공 후에도 오랜 기간 분양이 되지 않아 공실 상태로 남은 주택을 뜻한다. 건설사는 이미 준공을 마쳐 유지관리비용과 금융이자를 부담하고 있지만, 매매가 이뤄지지 않아 손실이 누적되는 구조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와 수도권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악성 미분양이 빠르게 쌓이고 있는 점은 시장 구조의 양극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24년 12월 말 기준 준공 후 미분양은 1만 150호로, 전년 대비 무려 87.5% 급증했다. 전체 미분양 주택(4만 5000호) 중 4분의 1이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시장의 심리적 부담도 적지 않다. 이 같은 수치는 2013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시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정책 당국과 건설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악성 미분양의 급증은 시장 내 수요 실종과 가격 피로감에서 비롯됐다. 고금리와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 실수요자들은 매입을 미루고 있고, 투자 수요는 이미 시장을 떠난 상태다. 특히 수도권 외곽과 지방의 경우 인구 감소와 공급 과잉이 맞물리며 미분양 적체가 심화됐다.
동시에 신규 분양 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2024년 한 해 동안 전국에서 공급된 아파트 분양 물량은 약 13만 9000세대로, 전년 대비 47% 감소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연간 분양 물량이 15만 세대 아래로 떨어진 것으로, 사실상 건설사들이 ‘분양 리스크 회피’에 나섰음을 의미한다.
대형 건설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GS건설, DL이앤씨, 대우건설 등 주요 건설사들은 당초 계획했던 분양 일정을 연기하거나 보류하고 있다. 미분양이 많은 지역은 사업성 자체가 악화되어 신규 착공도 중단되고 있으며, ‘착공 후 분양’에서 ‘분양 후 착공’으로 전략을 전환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지방 중심의 미분양과 분양 위축이 수도권으로 확산될 경우, 주택 공급 기반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특히 서울 등 수도권의 경우, 현재는 정비사업을 중심으로 한 공급이 유지되고 있으나, 민간 분양 축소가 장기화될 경우 ‘공급 공백’에 따른 미래 집값 상승 압력도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정부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최근 국토부는 ‘미분양 관리지역’을 50곳 이상으로 확대 지정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한 보증 기준 조정, 금융 지원 강화, LH를 통한 일부 미분양 매입 등 정책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 수요 회복보다는 일시적 방어책에 불과하다는 한계도 동시에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보다 정밀한 수요 예측과 지역 맞춤형 공급 조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예를 들어 인구가 감소하거나 청약 수요가 낮은 지역에서는 무리한 분양을 지양하고, 도심 내 정비사업을 중심으로 한 고밀도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방의 경우 단순한 주택 공급보다 산업단지·교통·생활 인프라와 결합한 종합 개발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된다.
한편, MZ세대의 주거 트렌드 변화도 변수다. 자산 축적보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소비 경향, 고금리에 따른 대출 회피 성향 등은 과거와는 다른 수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분양 주택의 평면 설계, 임대 연계 상품, 공유형 거주지 모델 등도 점차 수요자 중심으로 개편되어야 할 시점이다.
결국 지금의 악성 미분양 사태는 단순한 공급 실패가 아니라, 수요와 정책, 시장 구조 전반의 부조화가 낳은 결과다. 미분양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시장 경색의 신호이자, 미래 공급 위기의 경고다. 당장의 수치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정책-시장-기업이 함께 유연하게 대응하는 구조적 해법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