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오르자 ‘먹튀’…대주주 매도에 또 흔들린 테마주 시장
주가가 급등하면 기회일까, 함정일까. 최근 국내 증시에서 일부 테마주가 급등한 직후 대주주의 대량 매도가 잇따르며 투자자 불안이 커지고 있다. AI, 2차전지, 메타버스 등 핫한 테마를 등에 업고 단기간 급등한 종목들이 다시금 ‘먹튀’ 논란에 휘말리고 있는 것. 주가는 상승했지만 기업의 본질적 가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대주주의 ‘타이밍 매도’는 개미투자자들의 손실로 직결되는 구조다.
■ 주가 상승과 동시에 대주주 지분 줄이기…시장 또 출렁
2025년 들어 인공지능, 반도체, 로봇 등 테마주 중심의 종목들이 시장을 주도하는 흐름 속에, 급등 직후 대주주 매도 공시가 줄줄이 등장하고 있다. A사는 ‘차세대 AI 플랫폼’ 사업 발표 후 주가가 3일 만에 80% 넘게 급등했지만, 곧이어 최대주주 측 100만 주 블록딜 공시가 나오며 하루 만에 20% 넘게 급락했다.
이처럼 기업의 실질적인 수익 창출이나 기술력 검증이 끝나기도 전에, 주가가 먼저 급등한 상황에서 대주주가 주식을 처분하는 행태는 ‘먹튀’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거래량이 얇고 수급이 민감한 테마주의 경우, 대주주 매도 한 번으로도 주가가 연쇄 폭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 테마만 있고 실체는 없는 기업들…'묻지마 매수' 경계령
투자자들이 더욱 주의해야 할 점은 ‘뉴스만으로 주가가 움직이는’ 테마형 종목들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기준, AI 관련주 중 일부는 적자 상태에서 단순 협약(MOU) 발표만으로 주가가 3배 이상 상승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술 상용화 계획은 구체적이지 않고, 매출 기여도는 ‘0’에 가까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구조에서 대주주가 매도를 단행하면, 뒤늦게 뛰어든 투자자들은 매수 단가보다 낮은 가격에 손절매를 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금융감독원도 최근 **‘시장교란 우려가 있는 테마주 거래 동향 점검 강화’**를 공언한 상태다.
■ 매도 타이밍은 절묘하게…공시 직전까지 침묵
문제는 대주주 매도가 대부분 공시 직전까지 비공개 상태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일부는 장외에서 블록딜 방식으로 조용히 지분을 처분하고, 공시 시점에야 알려지는 식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주가가 올라가는 흐름을 보고 매수에 나섰다가, ‘대주주 매도 공시’라는 급브레이크에 손실을 떠안는 구조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상장사 대주주의 대량 매도는 엄연한 합법이지만, 주가 부양을 유도한 후 타이밍성 매도를 하는 경우 시장 신뢰를 해치는 요소”라며 “공시 요건 및 사전 예고제 도입 필요성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 개인투자자 피해 커…‘믿고 탔다가’ 낭패
가장 큰 피해는 역시 개인 투자자다. SNS나 커뮤니티에서 "○○ 관련주 폭등 예정", "곧 계약 발표" 같은 정보에 기대어 매수한 경우, 실체 없는 급등 뒤엔 대주주의 이탈과 함께 주가가 반토막 나는 사례도 많다.
실제로 지난달 한 AI 테마주는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다 최대주주의 시간외 대량 매도 공시와 함께 다음 날 30% 가까이 급락했다. 투자자 커뮤니티에선 “뉴스만 믿고 탔다가 한 달 치 수익 다 날렸다”는 원성도 이어졌다.
■ '먹튀 방지' 제도 미비…제도 개선 목소리도
현재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대주주의 지분 매도에 대해 별도의 **‘사전 통지 의무’나 ‘매각 제한 기간’**이 없다. 유상증자 직후라도, 이사회 승인만 있으면 자유롭게 매도할 수 있는 구조다. 이 때문에 “단기 차익을 노린 상장만 추진하고, 주가만 띄운 뒤 빠져나간다”는 ‘상장형 먹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식 제도처럼, 대주주의 일정 비율 이상 지분 매도 시 사전 공시 및 거래 제한기간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상장기업 지배구조 모범규준에도 주가 급등 시기와 대주주 매각 간 상관관계 분석이 들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 결론: 테마주는 타이밍이 아니라 ‘신뢰’가 생명
테마주는 잘 타면 큰 수익을 얻지만, 한 번의 흔들림에도 급격히 무너지는 불안정한 구조를 갖고 있다. 여기에 대주주 매도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까지 더해지면, 결국 그 피해는 개미투자자 몫이 된다.
주가보다 기업의 실체, 테마보다 지속 가능한 수익성, 그리고 이해관계자의 움직임에 더 집중해야 할 때다. 테마의 열기보다 대주주의 침묵이 더 큰 메시지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