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독은 꽉 찼다…해외로 눈 돌리는 K조선의 ‘제2 전성기’
대한민국 조선 산업이 다시 날고 있다. 한때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사양 산업’이라는 오명을 들었던 K조선이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며, 제2의 전성기를 열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국내 조선소만으론 감당이 어렵다. 선주들이 몰려오고, 독(dock)은 꽉 찼다.
결국 K조선의 시선은 해외로 향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유럽, 중동 등지에 생산 거점을 세우거나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단순한 저임금 외주가 아니라, 전략적 글로벌 생산망 구축을 본격화하는 것이다.
■ 수주 폭주…국내 조선소는 “만선 상태”
2024년 한 해, 한국 조선 3사는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의 절반 이상을 가져왔다. 특히 LNG 운반선, 암모니아 추진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에선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삼성중공업,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등 주요 조선소는 현재 2027~2028년까지 일감이 꽉 찬 상황이다. 이 말은 곧, 신규 수주를 따내더라도 바로 생산할 공간이 없다는 뜻. 국내 독은 이미 포화 상태다.
이런 가운데 선주들은 생산 슬롯을 확보하기 위해 계약금을 높이고, 인도일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조건까지 내걸며 K조선사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런 호황 속에서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해외 진출을 통한 생산 확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 동남아로 향하는 ‘제2의 조선 클러스터’
K조선의 해외 진출에서 가장 활발한 곳은 동남아다.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은 이미 조선·해양플랜트 관련 숙련 노동력을 다수 보유하고 있고, 인건비도 한국보다 훨씬 낮다.
최근 한화오션은 필리핀과의 합작 조선소 건설을 협의 중이며, 삼성중공업은 조선기자재 생산라인 일부를 베트남으로 이전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단순 하청이 아닌, 고부가 선박의 일부 블록 생산 및 조립까지 맡기는 형태다.
HD현대 역시 인도네시아에 기술 협력과 훈련센터를 운영 중이며, 조선 설계부터 품질관리까지 한국식 노하우를 현지화하는 시도를 확대하고 있다.
■ 중동은 '해양플랜트 신대륙'
한편, 중동은 ‘해양플랜트 신대륙’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은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대형 조선소 설립에 열을 올리고 있고, K조선사는 이들과 손잡고 합작사 및 기술 협력을 추진 중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우디의 IMI(International Maritime Industries). 한국의 조선기술을 수입해 조선소를 짓고 있는 이 프로젝트에 현대중공업이 핵심 기술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한국 기술로 중동에서 선박을 만들어 현지 수요 + 주변 아프리카·유럽 시장까지 공략하겠다는 계산이다.
■ 왜 해외까지 나가야 하나?
“국내에서 잘나가면 거기서 하면 되지, 왜 해외까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국내 인력난이다. 숙련 용접공, 도장공, 전기기술자 등 조선 핵심 기술자 수는 2010년대 대비 절반 이하로 줄었고, 청년층 유입도 적다.
둘째, 생산 여력 포화다. 더 이상 생산설비를 확장할 땅이 부족하고, 환경 규제 등으로 증설이 쉽지 않다.
셋째, 고객 밀착형 서비스다. 유럽 선주는 유럽에서, 중동 선주는 중동에서 인도받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결국 해외 거점은 단순 생산기지가 아니라, 전략적 글로벌 파트너십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 조선 강국에서 조선 플랫폼으로
K조선의 해외 진출은 ‘수주 → 생산’이라는 단순 모델을 넘어, 이제는 기술 이전 + 현지화 + 유지보수까지 포함한 플랫폼 모델로 진화 중이다.
즉, 한국은 설계·엔지니어링·기술관리의 본진으로 남고, 해외는 생산과 유통을 맡는 이중 구조의 밸류체인이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K조선의 기술 경쟁력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생산성과 이익률을 모두 높일 수 있는 방향이기도 하다.
2025년 K조선은 전 세계를 무대로 뻗어나가고 있다. 국내 독이 꽉 찬 건 단점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의 신호다. ‘선박은 한국이 만든다’는 공식을 넘어, **‘조선 산업은 한국이 설계한다’**는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 K조선의 항해는 이제 지구 반대편에서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