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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지갑, 병원과 교육만 열렸다 – 줄인 건 다 줄였다

제리비단 2025. 4. 14.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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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이 깊어지면 가장 먼저 줄이는 건 ‘즐김’이다. 외식, 쇼핑, 여행 같은 소비가 움츠러들고, 남는 돈은 필수지출로 돌려진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 소비지출 자료는 이 ‘생활 속 체감 불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해 한국 가계는 ‘놀고, 입고, 먹는 것’에 쓰는 돈을 줄이고, 대신 병원과 교육에는 더 많은 돈을 썼다.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지출 구조 재편이다.

2024년 기준 가계의 명목 소비지출은 전년 대비 3.8% 늘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외식비, 의류, 오락·문화 지출은 모두 줄었고, 반대로 교육비와 보건의료 지출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전형적인 경기침체형 소비 행태가 뚜렷하게 드러난 셈이다.

먼저, ‘먹는 것’에서는 외식 지출이 0.9% 감소했다. 자취생부터 가족 단위까지 외식 횟수를 줄이고 집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진 탓이다. 고물가와 외식 가격의 지속 상승이 주된 원인이다. 반면, 식료품과 비주류 음료 구입은 늘어났다. 이는 식자재를 사서 집밥을 선택하는 흐름이 강화됐다는 뜻이다.

‘입는 것’도 줄였다. 의류 지출은 1.4% 감소하며 전체 소비 가운데 가장 빨리 반응하는 ‘패션 경기’를 보여줬다. 유행을 좇기보다는 ‘있는 옷 입기’, ‘중고로 돌리기’로 전환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백화점이나 브랜드 매장의 소비는 감소세를 보였고, 오히려 온라인 중저가 쇼핑몰이나 리세일 플랫폼이 상대적으로 선전했다.

‘노는 것’은 더 심각하다. 오락·문화 지출은 1.1% 줄며 소비 축소의 상징이 됐다. 공연, 전시, 영화 등 문화 활동부터 여행·레저까지 줄줄이 지갑이 닫혔다.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잠시 반등했던 문화·여행 소비가 다시 위축되며, ‘일상회복의 궤도 이탈’이 우려된다.

반면 ‘안 쓸 수 없는 것’은 늘었다. 병원비는 9.1% 급증하며 전체 소비지출 중 증가폭 1위를 기록했다. 인구 고령화에 더해, 병원 진료비·약값 상승, 건강에 대한 관심 확대가 겹친 결과다. 특히 만성질환 관리나 정기 건강검진 수요가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고령층뿐 아니라 중장년층에서도 의료비 부담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교육비도 5.7% 증가하며 불황 속에서도 지출을 줄이지 않은 항목으로 꼽혔다. 특히 사교육비와 대학 등록금, 온라인 교육 구독 등은 여전히 가계에서 ‘절대 포기 못할 투자’로 간주된다. 아이 한 명에게 몰아주는 교육열은 가구 전체 지출 구조를 재편할 정도로 강력한 우선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소비 양상은 현재 가계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 불확실한 미래, 침체된 경기, 고금리 환경 속에서 '즐기는 소비'는 사치로 밀려나고, 건강과 자녀 교육이라는 기본과 미래를 위한 지출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른바 ‘필수 vs 선택’ 소비의 극단적 이분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내수 진작 정책이 본격적으로 효과를 내기 전까지는 소비심리 회복이 어렵고, 고정비 중심의 구조로 소비가 고착화되면 자영업·소매 유통업 전반에도 장기적 불황 그림자가 드리울 수 있다.

소비는 경제의 온도계다. 그리고 지금의 지갑은 냉랭하다. 생존에 꼭 필요한 의료와 교육만 살아남은 지금, 다시 ‘놀고 입고 먹을 수 있는’ 여유를 되찾으려면 소비 여건 전반의 회복이 먼저라는 메시지를 통계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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