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TSMC와 비공개 회동…대만 날아간 ‘반도체 외교’의 숨은 그림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최근 대만을 전격 방문해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TSMC 고위층과 비공개로 만난 사실이 확인되며, 반도체 업계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공식 일정을 앞세운 출장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반도체 외교’의 일환으로 해석되며 SK의 글로벌 반도체 전략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 회장의 대만 방문은 겉으론 대외 노출이 크지 않았다. 그룹 차원의 사전 공지도 없었고, TSMC 측 역시 회동 사실에 대해 공식 언급을 자제한 상태다. 하지만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최 회장은 TSMC 본사 인근에서 마크 리우 회장을 포함한 고위 인사들과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회동의 성격은 전략적 협력 가능성 및 AI 반도체, 차세대 패키징 기술, 그리고 공급망 다변화가 중심 주제였다는 후문이다.
이번 만남이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SK하이닉스의 행보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하이닉스는 최근 엔비디아 HBM3E 공급사로 확고히 자리잡으며 AI 반도체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문제는 생산능력 확대와 패키징 기술의 병목 현상이다. TSMC는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패키징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로, SK하이닉스와의 협업 가능성은 매우 현실적이다. 특히 양사가 AI 반도체 수요 급증에 대응해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패키지 통합 개발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공급망 안보’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서 TSMC는 핵심 축이다. 최 회장이 직접 대만으로 날아간 것은 단순히 기술 협력 차원을 넘어, 향후 SK그룹의 미국 내 투자 및 공급망 전략에서도 TSMC와의 관계가 중요해졌음을 의미한다. 최근 미국 애리조나에 3나노 공장을 짓고 있는 TSMC는 현지 고객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고, SK도 미국에서 인프라 확대를 서두르는 중이다. 양사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물리는 지점이다.
한편, SK그룹은 단순한 메모리 반도체 회사의 틀을 넘어, AI 및 반도체 설계 영역으로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엔 자체 AI반도체 ‘사피온’의 미국 진출도 가속화하고 있으며, 차세대 메모리와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내재화도 함께 추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TSMC와의 관계 강화는 SK에게 기술적 안정성과 글로벌 신뢰도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묘수’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이번 회동이 당장 계약이나 협력 발표로 이어지진 않겠지만, 글로벌 반도체 판도 재편의 한 축으로 SK와 TSMC 간 교류가 점차 부각될 가능성은 크다. 최 회장의 전격 방문은 글로벌 기술 동맹 강화의 신호탄이자, SK가 더 이상 ‘메모리 일변도’ 전략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선언으로도 읽힌다.
결국, 반도체는 기술만이 아니라 외교의 영역이기도 하다. 조용한 방문, 비공개 회동, 공개되지 않은 협상 테이블. 그 안에 담긴 전략은 앞으로 SK가 글로벌 시장에서 어떤 위치에 설지를 가늠할 중요한 시그널이 되고 있다. TSMC와의 연결 고리, 그것이 곧 SK 반도체의 미래를 다시 쓰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