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 줄자 상추·깻잎 ‘폭락’…출하 앞둔 농가 울상
외식과 회식이 줄어들면서, 채소류 중 특히 상추와 깻잎 가격이 폭락세를 보이고 있다. 주로 고깃집, 삼겹살집 등 외식 채널에서 소비되는 상추·깻잎은 개인 소비가 많지 않아, 외식업 수요에 직접적으로 연동되는 품목이다. 최근 외식 경기 위축과 더불어 출하 물량까지 늘면서 공급 과잉이 겹쳐 도매가격은 전년 대비 절반 가까이 하락했다.
■ 상추·깻잎 가격 ‘반토막’…도매시장 공급 넘쳐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024년 3월 기준 전국 도매시장에서의 상추 평균 도매가격은 1kg당 2,200원 수준, 깻잎은 100매당 2,800원 안팎으로 나타났다. 이는 1년 전보다 각각 40~50% 가까이 하락한 수치다. 특히 상추는 일부 지역에서 1kg당 1,500원대까지 떨어지며 생산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서울 가락동 도매시장의 한 경매사는 “상추나 깻잎은 저장이 어렵고, 수확 후 유통기한도 짧아 물량이 몰리면 가격이 급락하는 구조”라며 “출하가 몰린 주초에는 경매가가 평소 절반 수준에 머물기도 한다”고 전했다.
■ 외식·회식 수요 급감이 직접 원인
가격 하락의 배경에는 외식 소비 위축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상추와 깻잎은 가정 소비 비중보다 외식 채널 비중이 높아, 소비 트렌드 변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최근 음식점에서의 삼겹살 판매량, 소주 소비량이 함께 줄면서 관련 채소류의 수요도 급감한 것이다.
aT 관계자는 “과거에는 봄철 신학기, 신입사원 회식 수요 등으로 상추·깻잎 출하량이 빠르게 소화됐지만, 최근 몇 년간 회식 문화가 사라지고 외식 빈도도 줄어들면서 출하량이 그대로 재고로 남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주요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들 사이에서는 기본 찬류 축소, 채소류 유상 전환, 1회 제공량 조절 등의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업계는 “과거처럼 무제한 제공하면 폐기량이 많아져 원가 부담이 커진다”며 채소류 소비를 절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 농가는 수확철 앞두고 ‘출하 보류’까지 검토
이 같은 가격 급락에 생산 농가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상추·깻잎은 재배 주기가 짧고, 연중 공급이 가능한 작물이지만 수익성이 낮아질 경우 농가들은 출하 포기 혹은 수확 보류를 선택하게 된다. 실제로 일부 경기, 충청권의 노지 재배 농가는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출하 일정을 늦추고 있다.
경기도 평택에서 상추 농사를 짓는 이모 씨는 “소매가는 아직 체감이 안 되겠지만, 우리 같은 농가는 이미 도매 낙찰가 보고 ‘이걸 따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수준”이라며 “도매상조차 ‘받아줄 데가 없다’고 할 정도로 물량이 넘친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채소류 수급 안정을 위한 출하 조절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비축 수매 또는 자율 감산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농가 피해를 줄이겠다는 방침이지만, 실효성 있는 대응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 구조적 소비 변화, 생산조정 필요성 대두
전문가들은 이번 가격 급락을 일시적 시장 과잉으로 보지 않고, 외식 문화의 구조적 변화에 따른 수요 감소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김정훈 교수는 “상추·깻잎처럼 외식에 특화된 작물은 앞으로 소비 기반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며 “생산자 단위에서의 작물 전환, 지역 농산물 유통체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농산물 유통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회식 없는 시대’에 대응하는 품목별 전략 수립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단순히 비축하거나 수매로 버티기보다는, 가공용 원료 수요 창출, 밀키트 채널 납품 확대 등 수요 다변화 모델 구축이 절실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