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일은 하는데, 노동자는 아니다?
뉴스를 읽는 아나운서, 짐을 나르는 퀵서비스 기사, 물건을 포장하는 쇼핑몰 피커. 이들 모두 우리 사회에서 분명한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법적으로는 ‘근로자’가 아닌 경우가 많다. 이유는 하나다. 이들이 계약서상 ‘프리랜서’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고용계약이 아닌 위탁·도급 계약, 즉 ‘사업자 대 사업자’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들은 해고 통보를 받아도 부당해고로 인정받기 어렵고, 실업급여, 퇴직금, 산재보험 등 핵심적인 노동권 보호에서도 배제돼 왔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경직된 법적 기준에 변화가 예고된다. 정부가 특수고용직(특고) 및 프리랜서도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근로자’로 추정하는 제도 개편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대상에는 지상파 방송국 아나운서부터 배달 라이더까지 포함된다.
본론: "계약만 프리랜서일 뿐, 사실상 노동자였다"
고용노동부가 추진 중인 **‘근로자성 추정 제도’**는 일정한 요건을 충족할 경우, 노동자 본인이 별도로 입증하지 않아도 우선 ‘근로자’로 간주하고, 사용자가 반증하지 않으면 그대로 인정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근로자가 자신이 ‘근로자’임을 입증해야 했기에 분쟁이 생기면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방송국 프리랜서 아나운서 A씨는 실질적으로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뉴스 진행, 회의 참석 등 회사의 지휘·감독 아래 일했지만, 계약서상은 ‘외주 프리랜서’였다. 이 때문에 계약 종료 시 해고가 아니라 단순 ‘계약 만료’로 간주돼 부당해고 구제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새 제도가 시행되면, A씨는 실제 업무 형태를 근거로 근로자로 추정되고, 회사가 A씨가 근로자가 아님을 입증해야 하는 구조로 전환된다.
마찬가지로 퀵서비스 기사, 플랫폼 배달 기사, 학원 강사, 병원 간병인, 쇼핑몰 물류직 등도 이번 제도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될 수 있다. 근무 시간, 장소, 업무 지시 여부, 소득의 종속성 여부 등 구체적 요소들이 정리되어 ‘실질적 종속성’ 기준으로 판단된다.
결론: 유연한 노동, 유연한 보호가 답이다
우리 사회의 고용 형태는 갈수록 다변화되고 있다. 특히 프리랜서, 위탁, 특수고용 등으로 대표되는 **‘형식만 자영업자, 실질은 노동자’**라는 회색지대가 빠르게 확대되는 중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노동법이 이런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계약서 한 줄로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이번 근로자 추정 제도는 그러한 제도적 공백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 접근이다. ‘근로계약서가 없더라도, 실질적 근무형태가 근로에 해당하면 보호를 받게 하자’는 것이다. 법과 현실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형식보다 실질’을 중시하겠다는 방향성은 분명 진일보한 움직임이다.
물론 기업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노동 비용 급증, 계약 유연성 상실 우려를 내세우며 제도의 남용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으로 노동자를 보호할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구축이냐, 비용절감 중심의 고용구조 유지냐라는 철학의 문제다.
‘근로자 추정’은 단순한 행정절차가 아니다. 노동의 실체를 인정하자는 사회적 약속이자 방향 전환의 선언이다. 이제는 마이크 앞의 아나운서도, 오토바이 위의 배달 기사도 법의 그늘이 아니라 빛 아래 설 수 있어야 한다. 유연한 노동엔 유연한 보호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지금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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