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부동산 시장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와 수요 위축, 인구 감소 등의 여파로 지방의 ‘악성 미분양’ 물량이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일부 지역은 사실상 공급 붕괴 단계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의 가격 반등세와 달리, 지방은 외면받는 이중 구조가 심화되며 ‘텅텅 빈 아파트’들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 전국 미분양 6만 가구 돌파…지방이 80% 차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4년 2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약 6만 1,000가구로 집계됐다. 이 중 지방이 전체의 80% 이상인 약 5만 가구에 달하며, 특히 대구, 경북, 충북, 전북 등 비수도권 내륙 지역에서 심각한 미분양 적체가 이어지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가운데 상당수가 ‘준공 후 미분양’, 즉 이미 완공됐지만 입주자가 전혀 없는 상태라는 점이다. 흔히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이 물량은 전체 미분양의 약 40%에 이르며, 2013년 이후 11년 만에 최대 수준이다. 아파트가 지어졌음에도 불이 켜지지 않는 ‘유령 단지’가 현실이 된 것이다.
■ 수요 사라진 지방, 공급은 여전히 계속됐다
전문가들은 지방 미분양 급증의 원인을 ‘수요 없는 공급’의 구조적 모순에서 찾는다. 부동산 호황기였던 2020~2021년 당시, 수도권보다 규제가 덜했던 지방 중소도시에 건설사들의 분양이 몰렸고, 이른바 ‘영끌 투자’ 열풍에 힘입어 다수의 아파트가 계획됐다. 하지만 이후 금리 인상, 경기 위축, 인구 감소 등이 겹치며 실거주 수요는 뚝 끊겼다.
특히 지방의 경우 젊은 층의 수도권 유출이 가속화되며 인구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지역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급은 inertia(관성)처럼 지속됐고, 결과적으로 입주 수요는 없고 공급만 남는 기형적 구조가 발생한 것이다.
■ 대구·청주·전주 “완공됐지만 절반도 못 팔아”
대구의 경우 미분양 아파트가 1만 가구를 넘었고, 일부 단지는 분양률이 30~40% 수준에 머무는 상황이다. 한 때 ‘분양 불패 신화’까지 불렸던 청주 역시 공급 과잉의 후폭풍을 피하지 못했다. 2021년 분양된 모 단지는 3년째 미입주 상태로, 시행사는 입주자모집 공고를 네 차례나 수정하며 분양가를 낮췄지만 여전히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전북 전주, 전남 여수 등 관광지 기반의 중소도시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관광객은 몰리지만 실제 정착해서 살 사람은 부족한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 미분양 리스크, 건설사 줄도산 부를 수도
이 같은 악성 미분양 문제는 중견·중소 건설사의 유동성 위기로 직결되고 있다. 아파트는 분양이 완료돼야 자금 회수가 가능하지만, 미분양이 장기화될 경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상환에 어려움이 생기고, 이는 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달 사이 수도권 외 지역의 중소 건설사 여러 곳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거나 자금 조달 실패로 사업을 중단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금융기관들이 부동산 PF에 대한 대출 회수를 서두르면서, 지방 미분양 단지에 대한 추가 자금 지원은 더욱 막힌 상태다.
■ 정부도 ‘비상등’…구조조정 본격화되나
정부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미분양 관리지역 확대, 공공 매입,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 지원 강화 등을 검토 중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시장 자율에 맡기기엔 리스크가 너무 커진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며 “구조조정과 공적 개입을 병행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임시 처방이 아니라 지역 맞춤형 주택 수급 조절, 인구 구조 분석 기반의 중장기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공급을 줄이지 않으면 똑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 결론: 서울 반등 속 지방은 침체…양극화 심화 경고음
현재 수도권은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지방 시장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이 같은 지역 간 온도 차는 부동산 양극화의 구조적 심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지방의 주택 시장 안정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지방 부동산의 회복은 단순한 금리나 정책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사람이 떠나고 수요가 사라진 도시에서 ‘공급 조절’ 없는 개발은 결국 도시 전체의 붕괴를 부를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얼마나 많이 짓느냐’가 아니라, ‘누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재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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